[책 리뷰] 권력에 타락한 비운의 여자 '해리'의 이중성 / 공지영

2021. 4. 29. 22:31무한취미/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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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pinterest




해리1,2(2018)/공지영 장편소설
'만일 한 사람의 죽음이 한 사람의 인생으로 간주되지 않고 그저 집단으로 처리된다면
그 사회는 이미 집단적으로 죽은사회이다'

작은 마을 무진의 거대세력인 종교단체(성당), 그 안의 악의 축이 되었던 해리, 그리고 백신부에 대한 이야기.

<간략 요약>
해리는 엄마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그에 반해 이나는 유명한 화가인 엄마와 재혼한 아버지(대학총장)의 밑에서 유복하게 자란다.
백신부는 무진성당의 새로온 신부였는데 고등학생이었던 이나를 성폭행하고 아무렇지 않은듯 그녀를 대한다.
이 사건으로 이나는 이모가 있는 서울로 고등학교를 옮겨 삶을 이어나가지만, 그 때의 상처는 아물지 못한채 그녀 기억 한편에 자리잡는다. 30대 후반이 된 이나는 서울 진보매체의 기자로 활동 중이었는데,
유명한 화가인 엄마의 암수술을 이유로 무진에 잠시 내려오게 되고, 해리와 백신부의 불법적인 사회복지단체 설립, 모금활동, 비리 등을 알게 되며 사건의 정황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세상물정을 일찍 알아버린 해리는 영악하리만큼 돈을 밝히며, 남자들이 꼼짝 할 수 없게끔 남자를 유혹하고, 신체를 활용(?)해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 또한 남자의 성기에 봉침을 놓는 은밀한 활동들을 통해 남자, 고위 공무원들을 협박한다.
SNS에는 여리고 가녀린 여성이 이 모든 상황을 주님의 뜻에 맡기고 힘들게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진정 그녀의 뒤에는 뿌려놓은 봉침, 백신부와의 내연 관계를 통해 얻어진 인맥, 장애인 사회복지재단을 운영한다는 착한 이미지가 모여 무진의 모든 권력이 있다.

이나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인권재단, 선임된 강변호사가 모여 이 사건을 알리려고 하지만 쉽지 않았고,
결국 기사화 될 찰나(해리가 사회복지재단 자격없이 현재 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것을 허용해준 시청을 고발하고
그녀를 재단장에서 끌어내리려 폭로를 준비하던 중) 해리는 가벼이 목숨을 끊고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감상평 :

1. 사람들은 왜 해리에게 꼼짝할 수없었나?
= 악은 모두에게 있다. 해리는 이 인간의 악함을 잘 활용한 사람이었다. 해리에게 다가온 남자들은 전부 그녀의 몸만을 원했고,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해리를 버릴 수 없게끔) 그들의 가정을 파탄내고 사생활을 폭로하겠다는 약점을 잡아 구차한 권력을 갖게된다.

작가는 처음부터 악역 = 해리, 백신부 라는 포지션을 잡고 이야기를 써내려가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해리에게 당하고 돈과 권력을 뺏긴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어쩌면 그녀를 그렇게 만든 원인은 또 그들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2. 왜 천주교인가?
작가는 5년동안의 탐사조사 끝에 책을 펴냈다. 글의 처음부터 그녀는 이것은 허구이며 만약 독자가 이 책을 통해 어떤 사건이 떠올랐다면 그것은 온전한 독자의 생각이라고 못박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그려지듯이 생생한 장면들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 (작가 공지영이 작품 '도가니' 처럼 '해리'도 책을 영화화 하기 위해 글을 썼다고 무방할 정도로)
비단 천주교 뿐 아니더라도, 무법으로 살아도 모두가 선한 모습을 보이는 모든 집단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걸까?
그리고 그것을 충격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 천주교였을지도.

3. 사건을 보도하고 알려도 통쾌하지 않다.
: 해리가 저지른 악들을 알려도 (이렇게 될 줄 예상했었지만) 허무하고 씁쓸하다. 그리고 이게 현실의 모습이다. 비리는 쉽게 폭로되지 않고, 드러나더라도 감추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 덮이고 덮인다. 이슈가 되어 대중의 힘을 받는 사건은 드물다.
해리가 죽고 백신부는 아무렇지 않게 목사로 또다른 SNS를 올리고, 모금활동을 하며 살아간다. 악(惡)은 그렇게 또 정상인채 살아간다.

주말을 포함해 약 2주간 새벽시간을 활용해 이 책을 읽으면서 아침시간이 그리 상쾌하지 않았다. 흡인력 있는 작가의 능력으로 책을 끝까지 정독했지만, 책을 다 읽은 다음에도 특정 장면들은 머릿속에 구현되어 문득문득 생각이 났다.

마지막으로 책의 한줄을 인용하며 '해리'에 대한 감상평을 마무리해야겠다.
'미화된 언어나 진주를 꿴 듯 아름답게 포장된 '말'처럼 가증스러운 것은 없다. 진정한 시에는 가식이 없고 거짓 구원도 없다. 무지갯빛 눈물도 없다. 진정한 시는 이 세상에 모래사막과 진창이 있다는 것을 안다. 왁스를 칠한 마루와 헝클어진 머리와 거친 손이 있다는 것을 안다. 뻔뻔스러운 희생자도 있고 불행한 영웅도 있고, 훌륭한 바보도 있다는 것을 안다. 강아지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며 들에 피는 꽃도 있고 무덤 위에 피는 꽃도 있다는 것을 안다. 삶 속에 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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