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중국 공산당 100주년'의 이면을 만나다 '마오의 제국' /필립 판

2021. 7. 11. 01:01무한취미/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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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고향집에 돌아오자,
이웃마을에 사는 두더훙이라는 부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부인은 공무원들이 집으로 쳐들어와서는
그녀에게 불임시술을 강요하며
병원으로 가자고 윽박질렀다고 말했다.
그녀가 거절하자, 그들은
그녀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와
두 아이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그녀를 자동차에 싣고 떠났다.
병원에 도착하자 공무원 한사람이
그녀의 손을 꽉 잡더니 그녀의 엄지손가락을
쭉 펴서 인주에 밀어놓고, 동의서에 강제로 손도장을 찍었다.그녀는 줄곧 저항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의사는 5분도 안되어 시술을 끝냈다"

- 지방공무원들이 한 자녀 이상을 갖고 있는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부모들을 방문하면서
부부 중 한사람이 불임시술을 받아야 한다고
강요했었던 중국의 실태 -
마오의 제국 본문 中



"지방공무원들은 출산을 제한하는
공산당의 한자녀 운동 시작 후,
부인들이 출산 후 피임방법까지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됐다.
당연한 결과로 국가는 시민들의
가장 개인적이고도 사적인 행위를 규제하도록
관계기관에 촉구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중략, 인류학자 수잔 그린할프가 말했듯이,
지도자의 과학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충분히 대안을 모색해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방법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
이들 과학자들은 사람을 권리와 가치, 선택권을 갖고 있는
'사회적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같은 과학자들에 의해 조정되는
하나의 '기계와 같은 존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농민들의 현실은 자식들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특히 아들의 경우는 농사일을 도와주고,
자식들이 부모를 부양해야하는
노후 보장기능까지 떠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자녀 운동을 보면
가족의 미래는 전적으로 건강해야하고 능력이 뛰어난
외아들에게 달려있다는 점인데,
농민들이 이러한 위험부담을 감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 딸을 낳은 가정이라면, 상황은 더욱 꼬일 것이 분명했다.(1980년대 후반부터 중국의 상황 개괄)

"부인들은 임신한 상태에서
아이들의 성별을 판단할 수 있는
6개월을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아들이라는 판정이 내려질 때까지
낙태를 계속해야했다."

뿐만아니라, 이 한자녀 정책은
지방공무원들의 승진에도 영향을 미쳐
목표에 미치지 못하면 공무원들은 엄격하게 평가되어,
그들의 지금까지의 업무성과와는 관계없이
승진도 할 수 없다.

에필로그 중 -
"이러한 현상은 중국에서 살고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 나라는 한편에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변화하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제자리 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사회는 지난 몇 십년간의 혼돈과
폭력의 그늘에서 벗어나 앞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정치체제는 아직도 과거라는 족쇄에 묶여있고,
당 간부들은 그들의 권력과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중국이 지금 누리고 있는 경제적 호황이, 급속도로 한 번에 바뀌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어야 했는지.
노동자, 농민 탄압과 인권유린으로 얼룩진 정치를 미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경제발전을 꾀한 것은 아닌지.

인상깊었던 부분 :
문화대혁명 당시 백가쟁명 운동을 펼쳤던
마오쩌둥이 공산당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백가쟁명 운동에 참여했던 인사들을
모두 반역인사로 몰거나 검열을 진행하라고 지시한 것
(자택감금은 큰 일도 아니었다)

사스가 창궐했을 당시는
지도자가 장쩌민에서 후진타오로 바뀌는 중요한 시기였다.
당시 일년에 한번씩 열리는 전인대가 준비중이었는데
사스를 묻으려고 했지만 전염속도가 빠르고,
치료하던 의료진마저 감염되는 사태가 일어나자,
당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려는
의사들이 있었다.
(지금의 코로나19와 비교해보면 좋을 듯)

결국 당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전염병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라는 지시를 내리게 된다. 이후 격리병동과 백신 개발 등의 노력으로
사스 사태는 마무리됐지만
최초로 사드의 위험성을 고발한 의사들은
징역형을 살거나 격리조치되었다.

남방도시보라는 중국의 신문이 있다.
다른 신문들보다 진보,개혁성을 갖고있다.
(그래도 중국 당원들에게 검열받는 것은 똑같음)
보호 수용소(갈 곳 없는 노숙자, 정신이상자 들을 위해 지어놓은 수용소)에 잡혀 폭행으로 죽어간 어느 한 직장인의 사례를 폭로하고 인민의 안전과 권리를 위해 힘써왔다.

당시 보호 수용소는 이름과 달리
관리들의 착취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었음.
(보호수용소에 수용 된 후 풀려나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을 지불해야하고, 마련하지 못할 시
교도소나 농촌으로 이동해 노동을 착취당함).

남방도시보의 대담함과 용기로,
보호 수용소는 몇 년안에 폐쇄됐지만
신문 편집장은 공산당의 트집으로 결국 구속됨(횡령죄)
즉 이 사건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책임자를 구속할 수 없으니,
다른 이유를 들어 관련자를 처벌했다.

사회주의의 나라에서 살았었던(과거 인턴 생활 중)
나는 자유경제체제의 가림막 속에 한번도
이를 체감하지 못했는데,
이 책으로 부터 내가 완전히 장막 속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됐다.

중국의 어두운 부분을 확실히 알려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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