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8. 14:25ㆍ무한취미/독서
에세이집은 소설이나 다른전문서적에 비해
손이 잘가지 않는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 = 쉽게 쓰여진 책
이라는 공식을 들먹이며
내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읽는 책들의 문장들이
비록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지라도 공들여 써졌으면 했다.
그래서 집을까 말까 여러번 고민했던 책,
읽고 보니 사길 잘했다, 이 책과 만나길 잘했다.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으면서
동기부여나 결정할 때 참고할 영향력들이 사라졌는데
(특히 나는 인스타로 운동 또는 자기분야에서
열심히인 사람들을 보며 자극받곤 했다)
책이 있었구나, 나의 가장 큰 스승, 멘토,
내가 빠져들어 맹신하게 만드는 책들의 존재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기회였다.
책은 크게 읽기, 듣기, 보기, 쓰기 네 파트로 나눠지고
작가가 일상에서, 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모든 감각을 글로, 사진으로 표현했다.
+ 코로나 19가 전세계를 휘저어 여행꿈도 꾸지 못하는
2021년 늦여름에 책을 읽으면서 여행 향수병이 생겼다.
작가는 포르투갈, 파리, 니스 등을 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자연스럽게 책에 실었다.
마치 내가 돈이 없던 배낭여행객일 시절에
관광지에서 멀리 떨어진 호스텔을 잡고
마트로 빵이나 과일을 사러가던 그 길들처럼.
생경한 공간, 생소한 냄새, 서로 다른 사람들,
그립고 또 그립다. 유럽!
정말 다시 가고싶은 곳들이라서 코로나 이놈한테 절대 굴복하지 않고 더 건강해져서오래오래 여행다녀야지.
봄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건만
돌아와 보니 봄은 우리 집 매화 나무 가지에 걸려있었다.
-중국의 시-
"그것이 나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여행은 일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꿈꾸는 그곳은 이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지금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그곳에서도, 그 때,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매일 먹는 바게트가 지겨울 테고,
대화할 상대가 없는 일상의 외로움에 몸서리 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땐 그것이 또, 일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의 의무는, 지금, 이곳이다.
내 일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리하여 이 일상을 무화 시켜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의무이다. 나를 구원할 의무는 나에게 있었다.
매일은 오롯이 내 책임이었다."
[일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읽으면서 우리집 매화나무 가지와 다름 없는
내 책상 포스트잇 위에 중국의 시를 적었다.
버틴다는 생각보다 오롯이 나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으로,
흘러가기보다 헤쳐가기를.
'
"일어날 객관적 사태는 이미 정해져있습니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은 단지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나의 주관적 태도일 뿐입니다.
나는 다만 내가 어쩔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나 자신의 주관적 태도를
고상하게 만들 수 있을 뿐인것입니다."
(그리스비극에 대한 편지/김상봉)
[비극이 알려준 긍정의 태도]
오늘 비슷한 일이 터졌다. 작가는 신혼여행 비행기를 놓쳤고,
나는 근무시간에 주식을 하다 실수로 손실이 발생했다.
평소같았으면 두고두고 후회하고
주변사람들한테도 말하면서 자책했겠지만
이미 엎어진 물인데 어떻게하나,
생각으로 최대한 의연하게 받아들이려했다.
일어나지 말아야할 사태지만 일어났고
이미 날라간 돈 주워담을 수 없듯이
오늘 정신 놓고 휘적휘적 다니던 벌을 받는 구나.
생각하고 정신을 똑띠 차리기로 마음먹었다.
"계속했으니까, 오늘 내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안 거예요. 계속 했으니까 조금만 잡아줘도 금방 만들수 있는 거예요."
문득문득 선생님의 말이 생각날 때가 있다.
계속했으니까 안 거다. 그만두지 않았으니까 안 거다.
지치지 않았으니까 그 열매를 맛본거다.
지쳐도 계속했으니까 그 순간의 단맛을 볼 수 있었던거다.
이게 뭐가 될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뭐가 될 거라고 기대를 했다면, 꿈에 부풀었다면,
내 손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재능 없음에 한탄했을것이다. 쉽사리 나가 떨어졌을 것다. 하지만그러지 않았으니까,
계속 했으니까, 몸에게 시간을 줬으니까.
그래서 결국은 머리의 말을 몸이 알아들은 거니까.
[때때로 공방]
작가가 1년 넘게 물레 그릇을 만들며 선생님의 말을 정확히 캐치하고 완벽한 그릇모양을 만들어냈을 때의 이야기.
뭐가 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고 꾸준히 했던 결과,
손 끝에서 느껴지는 촉감과 눈으로 구별가능한 나의 작품.
얼마나 뿌듯할까?
사실 어떤 걸 꾸준히 할 때(공부든 운동이든 일이든)
관성에 취해 몸이 먼저 익숙해지는 일들이 종종 있다.
굳이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더 잘해야 한다고
채찍질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
알면서도 잘 되지 않는 이야기,
그래서 나가떨어진 적이 많았던 내 지난날들이 떠오른다.
"오늘도 나는 뭔가를 한다. 새로운 것들을 경험한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 그리고 행복해한다."
나는 내가 비옥한 토양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여기에서 어떤나무가 자라날지는모르겠지만,
그 나무가 튼튼했으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물론 이미 카피라이터라는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그 나무를 튼튼하게 키우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그 나무가 나의 마지막 나무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의 일이란 알수 없는 법이니까.
또 어떤나무가 뿌리내리기 시작할지 알수 없다.
하지만 내가그 나무를 키우기로 결심한다면 잘키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리미리 비옥한 토양을 가꿔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열심히 토양을 가꿨는데도 아무 나무도
안자란다면? 어쩔 수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내게 비옥한 토양은 남을테니까.
그 토양을 가꾸는 과정에서 나는 충분히 행복할 테니까.
그 토양을 가지고 있다면
도대체 행복하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오늘도 나는 뭔가를 한다.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 그리고 행복해한다.
비옥한 토양의 주인이 되어 비옥한 웃음을 짓는다.
나는 알고 있다. 그 방엔 이미 '나'라는 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그 나무가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그 이상을 바란 적은 없다. 그것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배우다]
작가는 이 글에선 희망차지만 때로 좌절하기도 한다.
카피라이터란 대중의 반응과 기억에 심어지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명확히 나뉘기 때문에
열등감에 괴로워하고 능력의 한계치를 느낀다고 전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비옥한 토양을 갖고있는 것은 확실하다.
양분을 빨아들여 언제든 박차고 일어날 수 있으니까.
듣고 보고 적고 기억하는 모든 과정을 통해 작가는
알지 못하는 세게의 사람들의 공감각을 끄집어낸다.
서른살이 4달 남은 지금,
내가 서른살에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냐고 묻는다면
말을 지금보다 아끼는 사람이 되자, 듣는 사람이 되자,
그리고 위에서 배운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자' 이 세가지다.
가장 어려운 건 마지막, 어쩔 수 없다고 말해보기.
지나간 것에, 해보지 못했던 것에 아쉬움이 많다.
뒤끝이 심하다는건가?
하지만 이제 서른살이 되면 인정할 건 인정하고,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음 좋겠다.
전부 다 껴안고 살아갈 수 없다.
하다못해 집에서 버릴 물건이 있다는것도 인정하고
(집에 잡동사니 매우 많음)
내 형편도 인정하고(형편에 맞게 써야하는 것도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없고 남이 할 수 있는게 있고
(제일 받아들이기 힘든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난 후 인생을 실패하거나
내가 일궈놓은 모든 과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처럼 훌륭한 작가도 자기 흙에 나무가
생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데
내가 너무 큰 나무를 원한다면 욕심이고 과하다.
아마 나는 견디지 못하고 나무를병들게 만들지도.
친한 옆팀 과장님이 쓴 것처럼
소박하고 수더분한 문장들, 사진들이
인상깊었던 힐링 책이었다.
밤이 깊은 시간, 자기전에 한 두 챕터씩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이 되어줘서 고마웠다.
모든 요일의 기록, 오늘 나의 기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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