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재일교포의 삶, 이민호, 윤여정 주연 드라마 원작 - 디아스포라 소설 '파친코' / 작가 이민진

2021. 9. 14. 08:52무한취미/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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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결말은 이미 정해져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제발 죽지 않길, 제발 힘들지 않길, 이만큼 간절히 응원했던 소설이 있었던가?

극중 인물들의 삶은 우여곡절이 많고 구구절절한 스토리로 가득차있다.
80년동안의 이야기, 재일교포 4대의 모습이 담긴 이 길고 긴이야기에는 흘려버리는 이야기가 나올법도 한데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사소한 이야기까지 기억이 날 정도다.
작가가 만들어낸 캐릭터들이 실제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적은 것처럼몰입도가 높다.
(책 맨 뒷편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도쿄로 가 직접 일본에 사는 조선인들 수 십명과 이야기 했다고 한다)

과장 없이,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와 해방 후 일본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꺼내봐도 좋다.
어느 역사소설보다 뛰어난 묘사를 보여준다. 스토리는 덤.

1. 잘못끼워진 첫단추에 오사카로 향하는 선자

선자는 엄마 양진과 하숙집을 운영하는데 (이미 선자의 아빠 훈이는 죽고 난 후) 밤일을 나가는 뱃사공들과 농사일하는 일꾼들이 작은 하숙방을 2교대로 사용하며 밥이나 빨래를 해주고 돈을 모은다.
2교대로 작업을 한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한 방에 장장 3명씩이 2번이라니. 총 6명이 시간을 달리해 방을 사용하며 생활을 유지한다.

그와중에 일본을 오가던 생선 중매상 한수의 아이를 임신하게되고 한수가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선자는 미망인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다.
하지만 하숙집의 손님, 목사 이삭은 결핵에 걸린 자신을 살뜰히 보살핀 선자가 아이의 아버지를 속일 수 있게 돕는다.
오사카로 가서 친형 요셉을 돕기로 계획했던 이삭은 선자를 데리고 일본으로 떠난다. 어쩌면 뒷말을 피하기 위한 도피성 이사이지만 일본의 침략으로 시끄러운 조선을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결정이라 여긴다.



2. 돼지우리에 사는 조선인들

오사카에서 작은형 요셉과 그의 부인 경희를 만나 그들과 한집에 살게 된 이삭과 선자는 조선보다 상황이 좋지 않은 환경에 아연실색한다.
가축과 함께 살며 제대로된 주방도 마련되지 않은 흙집에서 비를 피할 지붕과 가까스로 버텨줄 기둥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조선인들의 모습을 보며 선자와 경희까지 나서 장아찌나 김치, 설탕 과자를 팔러 시장에 나간다.
한수와 선자의 아들 노아, 결혼한 이삭과 선자의 아들 모자수는 부족한 환경에서도 훌륭히 성장하지만 어디가서 조선인이라고 당하는 무시에 진절머리친다.

3. 일본의 패망과 도피

한국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은 사회 경제적으로 혼란을 겪게 되고 이삭이 신사참배에 동의하지 않고 끌려가 죽임을 당하는 바람에 선자의 가족은 큰 두려움에 떨게된다.
선자의 예전 연인 한수의 도움으로 농장에 거처를 잡고 가까스레 큰 위험은 피하게 되지만 노아는 학업을 중단해야만했고 선자와 경희와 함께 궂은 농장일을 돕는다.


4. 노아의 죽음과 모자수의 파친코

선자의 두 아들 노아와 모자수는 기독교 성인의 이름을 따 지어졌지만 성격은 정반대다. 노아는 책을 좋아하고 공부를 열심히해 일본아이들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지만 일찍부터 공부를 포기한 모자수는 파친코 일을 배우며 성장해 나간다.
와세대 대학을 다니던 노아는 아버지 이삭이 죽고 물심양면으로 노아네 가족을 도와주는 한수의 정체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되고 대학을 그만 두고 잠적한다. 조선인이라는 것 마저도 숨기고 살아가던 노아도 자신의 신분을 감출 수 있는 파친코에서 일응 시작한다
문학을 좋아하고 교육환경이 떨어지는 조선인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충분했던 노아는 그로부터 8년 후, 선자와 한수가 직접 노아를 찾자 그들을 만난 다음 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배다른 아버지에게 태어난 것은 노아에게 견딜 수 없는 수치이며 일본인으로 위장해 살아가는 삶도 선자와 한수에 의해 그만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노아는 이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만다.


5. 왜 책 제목은 파친코 인가?

파친코는 앞서 말했듯 모자수가 아르바이트로 일을 시작하는 공간으로 처음 등장하며 노아가 대학을 그만둔 후 일본 소도시로 잠적해 파친코의 경리 일을 시작할 때 다시 배경이된다.
마지막으로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은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후 일본으로 돌아와 파친코 사업을 이어받겠다고 한다.
신분 상승이 막힌 신라 시대의 6두품 신하들처럼 공부를 잘하는 노아도, 일찍이 일을 시작했던 모자수도, 아들만큼은 영국의 은행에 취직시키고 싶어 미국 유학을 보냈던 솔로몬도 파친코에서 일하게 된다.
재일교포들의 한계와 아픔을 보여주는 장치이기도하지만 한 번에 떼부자가 될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곳으로
그. 실낱같은 희망 아래 죽을 듯이 열심히 살아가는 재일교포들의 모습이 보인다.


6. 짧은 감상평

마지막 선자의 모습, 10대에 고향 부산 영도를 떠나 평생 그곳을 그리워만 한 선자. 타국에서 죽음을 맞이한 선자의 어머니 양진, 그리고 요셉, 이삭 모두 각자만의 풀리지 못한 응어리를 가지고 삶을 마감한다.

남아있는 모자수와 그의 식구들도 다른 조선인들보다 유복하고 편안한 생활을 누리지만 사회와 구성원의 신뢰 없는 대접은 그들을 쉽게 좌절시킨다.
유혹에 빠지기 쉽고, 부패하고 타락한 일본인들에게도 쉽게 물든다.
단일민족 일본사회에서 3대, 4대가 내려오는 시간까지도 자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대한민국의 문화와 사상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재일교포들의 심적인 고통과 어려움을
긴 서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김영하 작가의 <검은꽃>과 비슷하면서 다르다.
검은 꽃에선 지구반대편 타향살이, 노예와 다름 없는 생활을 묘사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파친코>는 정체성의 혼란, 이방인이 겪는 부당한 사건들이 주를 이룬다.
두 책 다 꼭 읽어봐야할 책, 잊지 말아야할 역사가 담긴 책들이다.

길지만 책 두께에 비해선 짧은..리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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