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29. 22:29ㆍ무한취미/독서
책을 소개하기 전, 이 책에 대한 흥미를 돋우기 위한 영상을 첨부한다.
김영하 작가가 에전에 알쓸신잡에 나온 것을 몇 번 보고 그의 작품을 여러 권 접했다.
오직 두사람 등 단편들만 썼다고 하는데 흔치 않은 장편 소설 + 역사 소설이라고 하길래 밀리의 서재에 다운받아놨는데, 2주일 간 꾸준히 읽었다.
"역사소설의 향을 내뿜으면서도 이 책은 민족이란 이름 대신 운명 앞에 놓인 인간을 그려내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또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곱씹어낸다. "
역사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이유 / 작품론_ 질주하는 아이러니(서영채, 문학평론가)
이 책은 사실이 가미된 소설로 조선시대에 멕시코에 노예로 팔려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첫 장부터 세세하게 담는다. 어떻게 사람들을 모으고, 배를 타고 머나먼 멕시코로 흘러갔는지.
어쩌면 흘러갔다는 말이 맞다.
배를 타고 갔지만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닿지 않는 곳, 멕시코. 내일은 닿겟지, 모레는 닿겠지 하며 희망을 가지고 지내다가도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하는 환경에 도착할 그곳에 대한 환상과 두려움은 커져만 간다.
배 안에서 전염병으로 죽어나가는 사람, 그 안에서 아직 버리지 못한 신분제가 가져온 갈등. 국가가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무정부적인 아노미 상태가 정면으로 나타난다.
국가가 지켜줄 수 없는 사람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운명 앞에도 또 하루가 지난다.
멕시코에 도착해서도 '살았다'라는 안도감을 누릴 새 없이, 다른 인종과 다른 환경을 한꺼번에 받아들여야 한다. 그와 함께 에네켄 농장으로 팔려가기 위한 절차들이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자신들을 산 주인들에게 팔려가 4년간의 노예생활을 하게 된다.
이 간단한 역사적 사실로 개인들의 절절한 사연을 담을 수 없다.
간추린 줄거리에도 말 하지 못한 것들이 많아 답답하고 아쉬운데 이 아쉬운 마음을 작가는
소설 안에서 여한없이 풀어냈다.
"객지를 유랑하며 살아온 이정에게 일포드호의 주방은 아늑한 가정처럼 느껴졌다. 실제로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먼 곳으로 흘러가면서도 이정은 그것을 전혀 실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일포드호 안에서 일본인 요리사 요시다 덕에 주방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정
떠도는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배 안에선 매일 주방으로 갈 수 있었던 이정의 양면적인 마음, 인간은 어디서나 마음의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처음 받아보는 우정과 연대를 넘어선 요시다의 사랑이 거북하지만 그렇다고 요시다가 자기에게 열어준 이 공간을 벗어나면 음식의 풍요로움과 현실을 잊을 수 있는 바쁨 둘다를 버릴 수 밖에 없다.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좋은 것이 없는 선택 사이에서 이정은 주방을 택한다.
"물이 흔하고 지반이 단단한 땅에서 이주한 조선인들을 가장 먼저 괴롭힌 것은 바로 물의 부족이었다. 하늘과 땅, 그 사이를 강산이라 부르던 사람들이었다. 강과 산이 없는 세상을 그들은 상상하지 못햇다. 그러나 유카탄엔 그 두 가지가 모두 없었다. "
두 가지 뿐이겠는가, 그들의 언어도 음식도 생활문화도 인정받지 못하는 곳에서
이 모습은 새로 태어난 사람의 모습처럼 보일 것이다.
멕시코에서 또 기차로 여러 시간을 달려 유카탄 반도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알아차리게 됐던 변화들.
배 안에서는 인간다운 생활은 없었지만 한민족의 이름 아래 얼기고 설겨 나름의 공동체 생활을 했다고 치지만, 도착한 멕시코는 환경도 인종도 문화도 상상하지 못하게 달랐다.
민중의 생활에서 체감되는 변화는 느리다.
원칙이 바뀌고 제도가 바뀐다고 해도
천천히 물들어 가면서 변화 하는 것이 인간 삶인데,
의식주 3가지 모두가 바뀌어버린 삶에서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 세상의 모든 나라에서 아이에게 아버지의 성을 붙여주는 줄 아시오? 그래야 아버지들이 제 자식이라도 믿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키워주기 때문이오. 다시 말해 성은 아버지들의 불신에 대한 사회적 대가라는 거요. "
이세상엔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있다.
그런데 같은 법을
만들고 따른 다는 것은 공교로운 우연의 일치라기보다
인간 본성에서 이어진 어떤 것 때문인 것 같다.
지난 세기의 후반기에 활발해진 한국학의 성과에 힘입어 지배 계급이 아닌 기층민중이란 집단적 주체를 전면에 내세운 역사소설이 대거 창작됐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우리 역사소설은 민족국가를 절대시 하고 국가의 신민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강화하는 방식의 이야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사 소설 속의 등장인물은 한 개인으로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그가 역사에서 차지하고 잇는 정치적 이념적 역할과 위치에 따라 재단되고 평가되어 왔다. 개인은 특수하고 독립적인 개별 자라는 관점에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집단적이고 보편적인 카레고리에 집어넣어진 존재로 조망되고 계량되어졌다. 김영하의 역사소설이 의미있는 것은 그가 이러한 조류를 거슬러 역사와 민족과 국가의 의미를 심문하는 역사소설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해설_ 무를 향한 긴 여정(남진우 - 시인, 문학평론가)
소설이 역사적인 사건(실화)을 담고 있지만
역사소설의 무거움과 장대함, 범접할 수 없음,
국가에 대한 도전, 그로 인한 실패, 무력감을
느낄 수 없었던 이유다.
거꾸로, 개인들이 국가의 존재 목적을 찾고
국가에서 쫓기듯 내쳐진 후
심도 있지 않고 백성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생각들을
보여준다.
어느 날 불현듯 근대세계에 내동댕이쳐진 무력한 개인들이 근대적 질서에 한편으로 저항하고 다른 한편으로 포섭되면서 결국 죽음이란 비극적 결말에 도달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들의 행로는 지극히 개별적인 것인 동시에 시대적 의미를 내장하고 있으며, 이국의 낯선 풍광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실은 우리 민족이 지난 세기에 걸어온 과정을 압축해서 전달하고 있다. 따라서 태평양을 건너 먼 이국에 도착하는 이들의 항해가 보여주는 지리적 이동은 성리학적 세계관의 지배를 받는 중세에서 자본주의적 근대로의 이행이라는 시간적 이동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들은 동아시아적 중세의 질서에 의해 훈육된 사유와 육체를 버리고 이와 다른 서구적 근대의 사유와 육체를 가진 주체로 거듭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해설 이어서(남진우)
단편적인 물리적인 이동(대한민국-멕시코)으로 보여주는
당대의 어지러운 상황
멕시코에 적응하는 것으로
조선과 멕시코, 지리적 위치는 다르지만 같은 민족의
수난기가 머리속에 그려진다.
역사소설의 향을 내뿜으면서도 이 책은 민족이란 이름 대신 운명 앞에 놓인 인간을 그려내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또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곱씹어낸다.
작품 바깥의 말들 - 세계일보
다시 생각해도 인상깊은 인물이 많다.
입체적으로 그려진 인물들과
역사적 사실이 잘 어우러진 소설,
김영하 작가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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