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29. 22:29ㆍ무한취미/독서
3일 만에 소설책 격파..
처음 몇 장은 재미 없어서 그남자네 집 보다 훨씬 떨어지는
작품이군 이라고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표현들이 주옥같다. 영묘의 남편이 죽는 장면에서는 버스에서 헉 소리가 날 정도로
급작스러웠고 허망했다. 버스 안에서도 몰입력을 갖게 해주는 소설을 만나게 됐다.
(잠깐 딴 얘기로 새서)
약 일주일? 정도가 남았는데 새로운 소설을 한 권 더 읽을 수 있을까.
오래 걸리는 출퇴근 시간이 이렇게 소중한 것이었다니.
회사 출근시간이 빨라 반 강제적으로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도,
그 일찍일어나는 시간을 이용해 하루에 책을 읽는 것도 기쁘지만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는 이중적인 마음도 감출 수 없다.
그래서 오늘 오전도 책 읽다가 잠깐 서류 정리하고 은행다녀왔다..ㅎ_ㅎ
알차게 시간쓰기, 시간 낭비하지 않기!
마지막 장의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이 책이 자본주의/돈에 관한 책이라고 말한다.
글을 이끄는 연결고리는 맞다.
돈으로 시작해 돈으로 끝나는 영묘의 시댁, 그리고 성호의 죽음. 어찌보면
성호의 죽음도 돈이 없었으면 이처럼 허무하게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급인 영빈의 직업이 의사인데, 작가는 영빈의 입을 빌려 환자에게 자신의 확실한 병명과
병의 경과를 알려주지 않는 가족들을 혐오하리만큼 비판한다. 자신이 태어나는 것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없는데, 하물며 죽는 것 까지 자신의 계획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자유'라는 것을 아예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지 않나, 하고 말이다. 사실 태어나서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 그 말에 쓸쓸함이 묻어있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장 확실한 나의 것이기도 하고, 내가 일생 받들어 모신 나의 주인" 이기도 한 그 몸에 대해 마지막으로 선택할 권리를 갖는것.
이 거짓말을 가지고 영빈의 오래된 초등학교 동창 현금이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오래된 농담'이라고 말한다.
"그래, 농담이지. 듣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다 거짓말인줄 알면서도 들어서 즐거운거,
그거 농담아니니? 의사라고 농담하지 말란 법 있냐? 특히 너처럼 꽉 막힌 애는 농담 좀 할 줄 알아야돼"
- 농담, 듣는 사람이 거짓말이지 모르는 농담이었기 때문에 즐겁지 못했던 것일까
- 농담을 통해 치료가 됐다는 사람들의 사연을 들먹이며 현금은 반대의 이야기를 한다.
모르고 나서 더 오래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소설의 끝에서도 자신이 마지막인 줄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치킨 박의 이야기(평론가에 따르면, 이는 경호의 죽음과 대비되며
자신의 결정만으로 자살한다. 아이들과 집과 가게나마 남겨주기위해. 궁극적인 이유가 돈이니, 돈에서는 자유롭지 못하지만, 정신적인 선택은 경호의 가족과 경호의 죽음에 확실히 대비된다)도 함께 나온다. 2개 이야기와, 1개의 이야기의 상황. 작가는 농담이 좋다는 것일까....아닐까, 아리송하다
영빈은 성호의 주치의였고, 영묘의 든든한 지원자였지만 성호 식구의 입김에 밀려 제대로된 치료조차 해볼 수 없었다. 할머니가 부른 도사와 여러 약효도 성호의 병에 대한
혼란만 쥐어준 채 성호는 그렇게 떠난다.
구급차에 실려 간 성호는 영빈이 있는 병원이 아닌, 영안실이 좋은 다른 병원으로 실려가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죽는 장면은 똑바로 보고 죽고 싶다는 신호인듯 피가 섞인 눈물을 흘리며
눈을 뜨고 죽는다.
비참한 죽음이었다. 영묘는 슬퍼할 시간도 없이 시댁 식구들이 벌려놓은 뒷 수습에 경악해야했다.
도사가 말한 풍수가 맞는 집으로 옮긴 집은 이미 넘어가있었고
어쩔 수 없이 한 돌밖에 지나지 않은 둘째 아이와 첫째 아이를 데리고 영묘는 시댁으로 들어간다.
모종의 거래는 계속된다. 시아버지는 지금 가지고 있는 호텔을 장남인 영묘의 첫째아들-가부장 비판-에게 줄 수 있으니 그 동안 너가 처신을 잘 하라며 영묘의 독단적인 결정을 사전에 말리고
그 처지를 더 비굴하게 만든다.
영빈의 이야기는 그 사이사이 계속된다.
이름부터 '현금'인 초등학교 동창과 우연히 만나 그들은 은밀한 사랑을 계속해온다.
돈말고 영혼이 없어 보이던 현금은, 영빈과 함께 지내며 처음으로 영빈을 닮은
아이를 가지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를 낳아'주라'는 첫 남편의 시댁의 말은 10년동안
귓등으로도 듣지않으며 피임을 계속해왔지만 아마 이혼 후
자신의 일을 찾는 것(요리) 을 통해 달라지고 있었나보다.
영빈의 아내가 두번의 낙태 후 세번째 남자아이를 갖게되고- 가부장비판- 불임수술센터에서 둘은 우연히 만난다.
그 안에서 싹튼 도덕심은 돈 이외에 도덕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메마른 것 같았던 현금의 마음에 닿고, 영빈과의 관계도 끝난다.
영빈이 병원에서 신체적, 육체적인 감정소모를 끝내고 돌아가는 곳은 집이 아니라 현금의 집이었고
그 곳이 아마 자신의 신경이 필요치 않은 곳으로 던져지고 싶은 마음이 안착됐던 장소이지 싶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곳. 하지만 처음이라 색달랐던 그 기분은
그남자네 집에서 그여자가 그남자를 만날 생각을 하며 단장하던 그 작은 일탈과 비슷했다.
후에 미국에서 온 영빈의 큰 형 영준은
10억이라는 대학발전기금을 들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영묘의 시아버지는 약한사람에게는 강하고, 강한사람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이며
영묘가 그렇게 벗어나고 싶던 굴레를 단 한번에 끊어준다.
결국 돈이었던 것일까, 소리쳐도 되지 않았던 영묘는 그렇게 한순간에 자유를 맞는다.
(하지만 영준은 발전기금이라는 다른 방법을 통해 승리를 보여주니 그 거부감이 조금 덜했다)
영준은 결국 자신이 미국에 돌아가 그렇게 살 수 있었던 이유도
영빈이 보낸 다섯통의 메일(영묘의 이야기)을 보고
한국에 다시 돌아와 가족의 일들을 처리하고 다시 훌쩍 떠날 수 있었던 이유도
가족이라고 말한다. 가족을 책임져야하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미국을 간 것도 있지만
지금까지 내가 열심히 살았던 이유는 그 책임을 완수하고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영준 뿐만 아니라 해외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이것을 해내고 있는 것이라고.
영빈이 굴레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형이 압박감에 자신들을 놓고 떠나버렸다고 생각했던 그것이 도리어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영빈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개체로도 작용했다.(영빈의 아내의 임신)
<마무리>
가족, 돈, 아픔, 일상 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생생하게 담았다.
사건은 특별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감정은 내 삶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옥죔, 허탈함, 일탈의 욕구 같아 특별하지 않았다. 이게 소설의 흡인력인가 싶을 정도로 빠르게 읽었다.
비유도 섬세하고 전개 방식과 속도도 마음에 든다.
다음엔 어떤 책을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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