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7. 17:05ㆍ무한취미/독서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이후로
다시 한강 작가의 책을 찾아보게 만든 책이다
작가의 구성력이나 생각이 잘 드러나는,
자전적 에세이 같은 공간에 온갖 흰 것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처절한 기억이나 아픔 없이 쓰였다고
생각할 수 없는 한강 소설의 문장들답게,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는 글자들이
책장 안에서 너울너울 춤을춘다.
'이 책의 끝에 붙일 '작가의 말'을 쓰겠느냐고
편집자가 물었던 2016년 사월에,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이 책전체가 작가의 말이라고 웃으면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이 년이 지나 개정판을 준비하며,
비로소 어떤 말을 조용히 덧붙여 쓰고 싶다는-
쓸 수 있겠다는-생각이 든다.
-개정판을 준비하는, '작가의 말' 中-
아무 의미없이 건네는 말들,
재미로 쓰여지는 영상 속의 말들을 보다가
고귀하게 쓰여진 언어를 보니 고귀해짐을 느낀다.
(이러면서 또 읽기 편한 글들을 찾으러
각종 SNS나 유투브 알고리즘을 떠돌겠지만)
방금도 글쓰다가 유투브 한번 하고 왔지만..
이 아름다운 책을 감히 내가 인용하는 것
이외에 어떤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몇 번 들었다.
하지만 내가 읽은 순간의 기억을 되살리는 용도로
이 글을 활용한다면 그것 또한 의미가 있는 것이니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책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첫 딸아이를 잃은 이듬해 어머니는
두번째로 사내 아기를 조산했다.
첫 아기보다도 달수를 못 채우고 나온
그는 눈 한번 떠보지 못한 채 곧 죽었다고 했다.
그 생명들이 무사히 고비를 넘어 삶속으로 들어왔다면,
그후 삼 년이 흘러 내가, 다시 사 년이 흘러
남동생이 태어나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가 임종 직전까지그 부스러진 기억들을
꺼내 어루만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흰 中-
작가가 흰 것들에 대해 쓰자고 다짐하는 동기로 여겨지는,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것은
어머니가 스물 셋에 낳아
두 시간만 세상을 보고 간 언니에 관한 이야기다.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장면,
하지만 그 장면이 없었더라면
존재하지 못했던 나 자신,
모순적인 관계를 작가는 이렇게 표현한다.
그러니 만일 당신이 아직 살아 있다면,
지금 나는 이 삶을 살고 있지 않아야 한다.
지금 내가 살아있다면 당신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어둠과 빛 사이에서만,
그 파르스름한 틈에서만 우리는 가까스로
얼굴을 마주본다.
어둠과 빛처럼 절대 만날 수 없지만
이 낯선 유럽의 나라에서 작가는
죽은 제 언니의 혼을 느낄 수 있다.
언니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
언니가 마치 곁에 있는 것처럼,
곁에 있는 것에서 나아가
언니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당신의 눈으로 바라볼 때 나는 다르게 보았다.
당신의 몸으로 걸을 때 나는 다르게 걸었다.
나는 당신에게 깨끗한 걸보여주고 싶었다.
잔혹함, 슬픔, 절망, 더러움, 고통보다 먼저,
당신에게만은 깨끗한 것을 먼저,
그러나 뜻대로 잘되지 않았다.
종종 캄캄하고 깊은 거울 속에서 형상을 찾듯
당신의 눈을 들여다봤다.
그때 그 외탄 사택이 아니라 도시에 살았더라면,
어머니는 성장기의 나에게 말하곤 했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갈 수 있더라면,
당시 막 도입되었던 인큐베이터에
그 달떡같은 아기를 넣었더라면.
그렇게 당신이 숨을 멈추지 않았따면,
그리하여 결국 태어나지 않게 된
나 대신 지금까지 끝끝내 살아주었다면,
당신의 눈과 당신의 몸으로,
두운 거울을 등지고 힘껏 나아가주었다면.
-'당신의 눈' 中 -
작가는 언니의 혼에 대해서도,
조국의 반대편의 나라에서
나치의 학살에 죽어갔던 떠도는 형제들의
혼에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영혼을 생각하면 흰 색, 맑고 투명하고
깨끗한 어떤 것이 떠오르는데,
그러한 흰 모든 것 중에서도
잊지못하는 여러 혼들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소년이 온다'에서도 작가는
육신을 떠나는 혼에 대해서 묘사해 놓은 부분이 있다.
어디서 본 적있는 장면처럼 머릿속에 그려진다
작가는 죽은 영혼들이 육신을 빠져나와 존재하며
함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어느 추워진 아침 입술에서 처음으로 흰 입김이새어나오고, 그 것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
우리 몸이 따뜻하다는 증거,
차가운 공기가 캄캄한 허파 속으로 밀려들어와,
체온으로 덥혀져 하얀 날 숨이 된다.
우리 생명이 희끗하고 분명한 형상으로
허공에 퍼져나가는 기적.
-'입김' 中-
'입김' 처럼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글을 쓴다.
남은 나를 위해서 쓰는 위로의 말들.
이 책의 목록은 '나, 그녀, 모든 흰' 으로 구성되는데
이 글은 언니 덕분에 태어나게 된 '나'를 위로해주는
대목 같다.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흰 모든 것의 소중함을
알려주려고도.
활로 철현 켜면 슬프거나 기이하거나
새된 소리가 나는 것처럼
이 단어들로 심장을 문지르면
어떤문장들이건 흘러나올 것이다.
그 문장들 사이에 흰 거즈를 덮고 숨어도 괜찮은 걸까.
-머릿말 中, 10쪽-
모든 글이 시 처럼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글이라고 생각이 드는건
쉽게 꺼내기 힘든 작가의 이야기이자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삶의 모든 것,
지구 반대편으로 와서야 느끼게 되는 자신과 비슷한 그녀,
그리움의 대상인 언니의 혼과 공존하려는
작가의 의지가 느껴진다.
이제 당신에게 내가 흰 것을 줄게
더렵혀지더라고 흰 것을,
오직 흰것들을 건넬게.더이상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게.
이 삶을 당신에게 건네어도 괜찮을지.
- '초' 40쪽-
P.S 더 알아보는 사실
- 찾아보니 이 책은 2018년 맨부커 인터네셔널 부문
최종후보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 총 65편의 흰 것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다음은 마음이 먹먹해지는
'소년이 온다' 포스팅으로 찾아오겠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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