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독서] 일상 속의 나,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을 소개하며(여름과 루비 / 아무튼, 달리기 / 노랜드 / 고양이를 버리다(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2023. 8. 2. 00:30무한취미/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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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달리기'를 읽으며 하프 마라톤을 결심하다

 

나에게 마라톤은 항상 도전하고 싶은 영역이었다. 아마도 대학생 쯤? 원래도 수영을 좋아하던 내가 취업준비를 시작하면서 아침 수영을 다니기 시작했다. 레일을 도는 게 지겨울 법도 한데 나는 그 반복적인 행위가 좋았다. 공기 중과 물 속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마라톤을 언젠간 도전해봐야지 꿈꾸고 있었고 회사를 취직하고 나서 10km에 도전하게 됐다. 두 세번의 대회를 완주했고  이후에는 현생이 바빠서, 결혼준비를 시작하느라 심적 여유가 없었던 듯하다. 어쨌든 마라톤 대회를 접수하면 마음이 편치는 않으니까. 계속 연습을 해야 내가 잘 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기 때문에 약간의 강박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23년도 4월, 코로나도 끝나고 오랜만에 나갔던 10km 마라톤 대회에서 중간에 걸어버렸다. 

한 번도 레이스 중 멈춘 적이 없었다(버츄얼 런 제외). 그리고 그 일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퇴보했다니, 비슷한 수준이 아니었기에 확실히 실력이 떨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5월, 또다시 마라톤을 접수했고 그 때는 평소에 하던 헬스를 멈추고 야외 레이스를 돌았다.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5월에 나간 마라톤에선 마지막 스퍼트 내느라 10m 정도 남겨두고 멈춘거 말고는 무난히 들어올 수 있었다. 기록도 예전과 2~3분 정도 밖에 차이나지 않았고. 

아무튼 그 이후로도 중간중간 달리기를 했었는데 항상 마음속에 간직했던 목표는 바로 하프마라톤이었다. 시간을 들이면 완벽히 할 수있겠다는 목표 말고, 될지 안될지 감이 안서는 목표는 내 평생에 잡아본적이 없는데 얘는 왜 이렇게 내 맘 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는지 모르겠다.

그러던 중 이 책을 읽게됐고 되든 안되든 해보자라는 생각에 덜컥 손기정 마라톤 대회를 접수했다. (19년에 10km 최고 기록을 세웠던 대회다) 공교롭게도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하프 마라톤 대회 알아볼까? 생각했을 때 손기정 대회를 검색했고 마침 또 접수중이었다. 이정도면 대회 나가라는 운명이다.

여름이 다 지나가면 밖에서 좀 뛰어야겠다. 마라톤은 기억을 미화시키는 마력이 있다.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멈추고 싶은 순간들도 분명 있었는데, 지나고 보면 다 좋은 기억으로 덮인다. 지금도 또 가을 바람을 맞으며 뛰는 상상을 하게 만드네. 

 

 

 

 

- 시인이 소설을 쓰면, 감탄사가 나온다 '여름과 루비'

 

여름과 루비는 아직 읽고 있는 책이지만 전자책으로 소설을 완독할 수 있을만큼 흡인력이 있는 책이다. 내 기준에 전자책은 에세이, 자기계발서 정도를 휙휙 읽을만한 집중력으로만 붙잡게 되는데(핸드폰으로 전자책을 보다보니 갖은 앱들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화면을 돌려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책은 회사 복도를 지나가는데도 켜서 읽고 싶게 된다. 

일단 나는 마음을 관통하는 표현들을 좋아하는데, 이 책에는 문단마다 그런 구절들이 나온다. 예를 들어 밑줄친 몇 개의 구절만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미끄러워서, 내 존재가 미끄러워 사랑하는 사람을 붙잡아두지 못하는 걸까 고민한 적이 있다. 그렇다. 어릴 때 나는 대체로 미끄럽게 존재했다. 미끄러워서 다들 나를 타고 훌훌 내려갔다.'

'새엄마와 나는 친해지지 못했다. 우리는 고작 열여섯 살밖에 차이나지 않았다. 자주 싸웠고, 서로 미더워하지 않았다. 우리는 비슷한 불만을 품었다. 나는 '새'엄마가 삻었고, 그녀는 '헌'자식이 싫었다.

'생각은 사건 후에 온다. 시간이 지난 후, 그 때를 기억한 마음에 결정처럼 내려 앉는 것.'

'밤, 더위, 쓸쓸함이 몸에 달라붙었다. 엎드려 이 생이 주는 가혹함에 대해 생각했다' 

 

몇 문장만 봐도 다르지 않나, 시가 함축적이라고 해서 펼쳐놓은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펼쳐놓은 의미를 곱씹어 다시 말아넣는 작업 때문에 시간을 더 쏟아야 할 필요가 있겠다.

-  큰 우주, 작은 지구 속에서도 귀결되는 건 어짜피 우리, 그리고 나, '노랜드'

 

책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를 읽고 우주, 과학 소설에 거부감이 사라졌다. 거부감이 사라진 것이지 아직 즐겨 읽는 장르는 아니지만 눈여겨 본다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다. 예전엔 과학, SF 코너 근처를 보지도 않고 지나갔으니까. 

노랜드는 천선란 작가의 단편소설집인데 공상과학, SF 소설들이 옴니버스 식으로 엮여있다. 지루하지 않고 50페이지 내외로 한 이야기가 끝나니까 시간 여유가 많이 없을 때 짧게 짧게 읽기 좋다. 저번 책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머나먼 우주에서 바라본 나는 점 보다도 작은 점, 그리고 그 점의 또 점,,점,, 일텐데 뭘 그렇게 아둥바둥 살아가는지. 내가 목표를 이루고, 노력을 한다고 해서 그 점의 모양이 바뀌지 않을텐데, 무력감이 든다. 

지구에서 1232 광년 떨어진 우주공간에서 솜사탕 모양의 가스 행성이 발견됐다.

그 작은 점의 점의 점이 발견한 솜사탕 행성, 그리고 그 점들이 무수히 모여 살아내는 여기,  어쨌든 살아야할 이유가 있는 이 곳. 

 

-  행복할 것은 분명한데, 힘들고 슬플 수도 있는 어떤 결정을 할 시기  '고양이를 버리다,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이 글의 카테고리가 일상도 아니고, 책 리뷰도 아닌 임신준비에 들어와 있는 이유.

같은 팀 A 차장님은 고3 수험생 자녀를 키우고 있는 아버지다. 외동 아들을 잘 길러 건축학과에 보내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화려한 생기부 기록들을 쌓아 나갔지만, 어느날 아들의 한마디 "나 연기 하고 싶어"로 이 가족의 받아들일 수 없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한다는 아들의 말에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던 차장님의 와이프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남부럽지 않게 키워왔던 아들의 갑작스러운 통보에 하던 일을 손에 잡을 수라도 있었을까? 

A 차장님은 다시 태어난다면 (결혼을 한다는 가정하에)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했다. 이미 한 번 경험해봤으니 그걸로 족하다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있어서 이번 생은 행복했다는 말을 덧붙이긴 했다. 

어떤 '기대' 없이 아이를 기를 수 있을까? 하루키는 90살 당뇨와 암 합병증으로 뼈만 남아 돌아가시기 전의 아버지와도 제대로된 화해를 하지 못했다. 중일전쟁 참전 병사였던 하루키의 아버지는 자신이 전쟁 때문에 하지 못했던 수학(修學)을 자식이 이뤄주길 바랐다. 자식으로 하루키가 아닌 다른 사람이 태어났어도 그는 그걸 바랐을 것이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하루키는 어렸을 때부터 재즈, 야구, 독서 등을 즐겼다) 관심있는 분야만을 탐독하던 하루키는 아버지와 절연상태까지 이르렀고 훗날 커서 아버지를 아버지를 부르지 못하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아이를 갖으려 노력하는 이 시기에 위에 언급했던 이야기들을 읽고 듣고 있으면 마음 한 구석에서 한숨이 올라온다. 왜 나는 내 기대와 욕심으로 컨트롤하지 못하고(아이를 갖는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무한정의 변수만 존재하는 결정을 하려고 하는걸까. 단편적으로 아이가 있으면 참 좋겠다. 생각하는 것과 저런 것들은 정말 다르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자꾸 나에게 되묻기만 하는데 질문만 메아리치고 대답이 없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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