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길 위의 소녀' / 프랑스 소설 추천 / 청소년 소설 추천/ 델핀 드 비강 지음

2021. 11. 7. 23:53무한취미/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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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애니메이션 같은데 내용은 전혀 아님😊



충실한 마음을 읽고
작가의 문체와 구사력이 맘에 들어서
예전 작품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읽기 쉽지만 지나치기 힘든 두 소녀의 이야기.
데미안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청소년기 아이들의 세심한 감수성과 치열한 성찰,
고민을 통한 성장을 그려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아마존 베스트 셀러, 서점 대상 수상 등
여러 상을 받은 이 책도 비슷한 이유 같다.
이 책은 떠돌이 노숙자 생활을 하던 노와
가족이 있지만 외로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루,
두 소녀의 만남을 부드럽게 펴낸다.




1. 천재소녀와 길거리의 소녀의 만남

루는 두 학년을 뛰어넘어 자기보다
두세살 많은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지만
발표는 극도로 싫어하는 학생이다.
하지만 수업에서 루가 스스로 발표주제를
고르고 정해야 할 땐 그것도 별 수 없다.
길 위의 노숙자에 대해 짧은 발표를 하기위해 루는
평소 자주 가던 지하철역에서 노를 만나고
둘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애의 해쓱한 얼굴, 말라서 더 커보이는 눈, 머리 색깔,
분홍색 스카프가 내 눈에 선했다.
나는 그 애가 걸친 세겹의 블루종 아래의 비밀을 상상했다. 그 애의 심장에 가시처럼 박혀있을 비밀,
절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을 비밀.
나는 그 애 곁에 있고 싶었다.
그 애와 함께 있고 싶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그 애의 나이를 물어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게 못 견디게 궁금했던 것이다.
그 애는 굉장히 어려 보였다.

그와 동시에 나는 그 애라면
진짜 인생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보다는 인생에서 진짜 겁나는
그 무엇을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 길위의 소녀 2장 中-

루는 발표를 준비하기 위해 인터뷰 목적으로 노를 만났지만
늦지 않게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루와 달리,
이야기가 끝나도 돌아갈 곳이 없는 노가 신경 쓰인다.
루는 카페에서 음료(노는 대부분 술을 골랐지만)를
사주는 것 이외에도 도움을 주고 싶어한다.
노는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다르다.
끼니를 챙기지 못하고, 잠잘곳을 구하러
하루를 온전히 다 써야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서로를 만날 시간에
노와 루는 자기의 삶에서 벗어나 이야기 안에서만
머무를 수 있게 되고, 발표가 끝나도 루는 노를 찾아온다.



2. 엄마와 루

루는 부모님께 노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사실 루의 엄마는 루의 동생을 갖기 위해
8년을 쏟고 타이스를 낳지만
타이스는 태어나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의 품에서 세상을 뜬다.
충격으로 루의 엄마는 루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깊은 우울증에 빠지게된다.
엄마가 정신병동에 입원하고
루는 할아버지 집에 맡겨지고, 2주에 한 번
부모님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된다.

엄마의 질문은 늘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다.
오늘 하루 잘 보냈니, 오늘 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했니,
그 블루종 입고 가서 춥지는 않았니.
엄마는 무심하니 내 대답들을 흘려듣는다.
우리는 일종의 역할극을 하는 중이다.
엄마는 엄마 역할, 나는 딸 역할,
각자 자기 대사를 정확하게 소화하고
대본의 지문을 충실히 따른다.
이제 엄마는 절대 나를 어루만지지 않는다.
엄마는 내 머리칼을 쓰다듬지 않고, 내 볼을 만지지도 않는다. 엄마는 절대 내 머리나 허리를 안아주지 않는다.
엄마는 절대 나를
꼭 안아주지 않는다.

- 7장 中 -

루도 결핍이 있었을거다. 타이스는 잃고 자신마저
잃어버리게 된 것처럼 엄마는 행동했으니까.
결핍이 있는 자는 결핍이 있는자를 알아보고
루는 노를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다.
서로를 기대게 할 수 있는 대상으로.

루는 부모님을 설득해 노를 집으로 데려오게 되고,
엄마는 슬럼프를 극복해내려는 것처럼
일상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더 연약한 존재를
돌보기 위해 루도, 엄마도 현재에 집중한다.


3. 노의 가족, 불행의 시작점

노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의 외면을 받았다.
원하지 않는 추행으로 생긴 아기는 그날의 기억을 되새김질하게 만들었고 아기가 주위에 머무는 것조차 원치 않았다.
노는 조부모 손에 키워졌고 할머니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후 할아버지 혼자 노를 키울 수 없게 되자
엄마를 찾아 집을 나온다. 그 때 노의 나이가 7살이었다.

루의 집으로 들어오게 된 노는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간다.
시간에 맞춰 밥을 먹고, 잠을 잔다. 학교에서 루가 돌아오면 루가 배운 것들, 있었던 것들에 대해 듣고
루가 하는 실험에도 참여하며 처음으로 안정을 찾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는 일을 구하게 되고,
경력이 없어 호텔 청소부터 일을 시작하는데
일이 고되고 힘들자 길거리에서처럼
술과 약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호텔 사장의 폭력적인 언행,
또다시 혼자가 되어버린 것 같은 마음에
노는 겉잡을 수 없이 망가져가고,
루의 가족은 더이상 노와 함께할 수 없다.
하지만 루만은 노를 놓지 못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 여기서 '나'는 '루'다)

나도 왜 어젯저녁에 잠들면서 어린 왕자가 생각났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우가 생각났다.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자기를 길들여달라고 한다. 하지마 어린왕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모른다.
그래서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설명해준다.
나는 그 대목을 줄줄 외우고 있다.
"넌 아직 내게 세상에 흔한 여느 소년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나는 네가 필요 없어. 너도 역시 내가 아쉽지 않겠지. 나도 너에게는 세상의 수많은 다른 여우들과
아무 차이도 없는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네가 나를 길들이나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돼. 너는 나한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일 거야.
나 역시 너에게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일 거고."
어쩌면 중요한 건 그것뿐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길들여야하는 누군가를 찾는 것 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 38장 中 -


4. 떠나간 루, 놓지 못하는 둘의 끈

루는 결국 노를 떠난다.
둘은 함께 아일랜드로 도망가자는 계획을 세웠지만
현실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잘 아는 노는 지하철역에서
루의 손을 놓는다.

우리는 함께인거지, 루, 우리는 함께야.
너는 나를 믿지, 나를 믿어주는 거지,
네가 나갈 때는 나를불러, 내가 계단 밑에서 기다릴게,
내가 카페 앞에서 기다릴게,
보수는 더 좋은데 이제 밤에 일해야해,
나 좀 자게 내버려둬, 완전히 녹초가 됐거든,
움직이질 못하겠어, 이 이야기는 하면 안 돼,
우리는 함께인거지, 루,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너는 나에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될 거야,
쉬잔 피베와 통화하고 싶다고 말했어.
네가 나와 함께 가줄 수 있다면, 넌 질문이 지나치게 많아.
그러다 넌 결국 뉴런들에 치여 죽고 말걸,
우리는 함께인거지, 그럼 넌 나와 같이 가야지.
난 결코 너의 가족이 될 수 없어, 루,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럼 넌 나와 같이 가야지,
내가 차표를 사올게, 이건 네 인생이 아니야, 너도 알지.
네 인생이 아니라고.

- 51장 中 -

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두 소녀에서 공통점을 찾았다.
조건없이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둘은 하나로 이어질 수 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의지했던 친구들 생각이 났다.
그 때만큼 뒷배경 없이 순수한 초상화로 사람을 바라봤던 적은 없었던 듯하다

루와 노의 이야기는
가볍게 읽히지만 머릿속에서 가볍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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